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시에 천착해 살던 시절,

분명 그이는 내 삶에 의미있는 양분을 제공해주었던 시인이다.

여성 신문에 오른 문정희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반가왔던 것도 그 때문.

잊고 지냈던 오랜 벗을 우연히 만나 소식을 전해듣는 기분마저 들어서였다.


시인 문정희 “시는 영원한 업보, 또 끝없는 쾌락”

http://www.womennews.co.kr/news/view.asp?num=54820

(여성신문 1205호 [특집/기획] (2012-09-28), 이은경 / 여성신문 편집위원 (pleun@womennews.co.kr))


하지만, 뉴데일리에서 강한 톤으로, 억울함을 넘어서 당당한(?) 분노로 

역사를 부정하고 폄훼하는 그이를 바라보고는 그만 마음이 참담해지고 말았다.


아버지 밟고 살려고? "나를 밟으라!" 해야지! http://bit.ly/OEAb6h

[조우석 연재칼럼 ①] 으랏찻차 박정희! 유신40년을 유신하라! '維新말춤' 다시 춰라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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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뉴데일리 2012.10.04 조우석 /문화평론가)


“미당 서정주 얘기 좀 할까요? 

작품을 새기면 새길수록 그 분이야말로 20세기 근현대 문학사에 우뚝한 거물이세요. 불세출의 시인이구요. 

요즘 토속적인 백석(白石), 참여파의 시인 김수영을 두고 전에 없이 높은 평가가 이뤄집니다만, 그분들도 분명 위대한 시인이죠. 또 20세기 시문학의 거물입니다. 

하지만 진정 한 분을 꼽으라면 압도적 작품의 양과 질에서 미당을 꼽아야 옳죠.”

 - 문화평론가 조우석


“제 생각도 눈꼽만치 다르지 않습니다. 

미당을 친일파 시인이라고 하는 혹평은 우리 문단의 균형감각에 문제가 많다는 걸 스스로 드러냅니다. 

쉽게 말할까요? 

모국어로서 한국어의 높이를 키워주신 분, 그게 제가 아는 미당이예요. 

하지만 한국문단 일부에서는 친일 시작품 몇 편을 들어 미당을 폄하하곤 하죠. 백낙청의 창비 진영에서 주도했던 이런 움직임은 벌써 30년 내외인데, 사실 친일시라고 해보니 빛나는 1,000여 편의 작품 중에 3~4편일 겁니다. 

그 정도의 얼룩이 뭐 대수롭습니까? 

거인의 몸에 흙탕물 몇 개가 묻었다고 문제가 됩니까?”

 - 시인 문정희


안다.

미당 서정주의 그 미려하면서도 소박한,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깊이를.

맘이 설레기도 하고 동하기도 하는 그의 시를 좋아한다.

하지만 그렇다고 해서,

그 엄혹한 시절, 목숨을 바꿔 의를 지키고 생명을 구하려 했던 이들의 빛난 정기가

흙탕물 몇 개 묻었다고 그게 대수냐라고 반문하는 그 노기의 가벼움에 묻힐 순 없다.

그 가벼이 여겼던 대의가 죽어 오늘날 이 괴물같은 역사를 살게 하고 있으니까.

가진 자들은, 누려온 자들은, 빼앗은 것으로, 온당치 않은 것으로 떳떳한 척 하는 이들은

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하는 그 처절한 삶이라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인 이상,

그이의 반론은 재고의 가치가 없다.

전쟁을 종결시킨 기여가 있다고 해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참살한 핵무기를

기뻐 반기며 정당화하지 못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.

언제까지 과거에 묻혀 살 거냐고, 이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쳐대면서,

몇 마디 사과 아닌 사과로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박근혜 대선 후보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.

그렇게 얻은 아름다움에, 그렇게 인정받은 삶의 의미들에 도대체 무슨 고갱이가 담길 수 있단 말인가.

어떻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자 말할 수 있단 말인가.


오랜만의 조우가 못내 안타까움으로 얼룩지고 말았다. 슬프다.



Posted by 하늘긔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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